94년부터 95년까지 일 년간 미국 메릴랜드 타우슨대학 스튜디오 작업 중 우리의 정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다시 찾아내 그 뒤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변에서 가까이 느끼는 우리의 감동과 정서를 찾아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90년대의 작품들은 비단 천에 염색효과를 더 잘 나타내기 위하여 대부분 이중구조로 짜여 진 쟈가드 비단천(Jacquard Silk)에 초방염과 착색 발염을 이용한 스크린 프린트를 응용하여 제작되었다. 모티브로는 구겨진 달력이나 의자를 등장시켜 꽃이나 물고기가 가지고 있는 곡선의 평범한 이미지에 액센트를 주었고 나아가서는 아라비아 숫자, 문자 또는 포토샵으로 찾아낸 패턴 등을 착색 발염 기법을 이용하여 단조로울 수 있는 공간에 변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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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노트 염색공예는 피염물과 염료 또는 안료를 매체로 하여 순수한 조형작품이나 실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되도록 제작된다. 그것은 단지 목적에 따른 선택일 뿐 조형과 실용 어느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동안 제작된 작품들은 제작 과정에서 천의 전 ?후처리 정확한 비율의 염액 제조(미리 샘플을 만들어 디자인에 가장 적합한 색상을 골라 사용함), 파라핀의 적정온도, 철저한 증열 처리(천의 두께와 크기에 따라 1시간에서 2시간), 오염 방지와 약품 처리를 겸하여 수세하고 드라이클리닝까지 하나도 소홀히 취급된 것은 없었다. 왜 구태여 염색공예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구하는 초방염을 선택했느냐 묻는다면 어떠한 다른 염색기법도 이 탁월하고 무한한 표현 가능성을 따르지 못한다는 나의 고정 관념 때문이다. 초방염(Batik-painting)으로 제작된 나의 70년대의 작품들은 주로 챤팅(Tjanting)을 사용하여 가는 선이라든가 점들로 비단 천위에 이미지를 표현하였다. 그 당시 챤팅으로 나타나는 섬세함에 상당히 매료되었던 것 같다. 챤팅이란 도구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파라핀의 적정온도의 유지이다. 대부분 파라핀의 온도는 섭씨 100°C 내외가 적당하나 디자인의 선의 굵기, 천의 두께 등에 따라 차이가 나므로 여러 번 실험을 통해 최적의 파라핀 온도를 찾아야 한다. 파라핀 온도가 높아지면 선이 굵게 나타나고(파라핀 번짐) 낮으면 천에 파라핀이 밀착되지 않아 방염이 되지 않는다. 80년대 후반에 와서는 이제까지의 구상적 표현에서 벗어나고자 구도와 색채의 변화를 시도하여 보았는데, 그 이유는 계속적 변화 없는 나의 작업들이 혹 일정의 매너리즘에 빠져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와 자책 때문이었다. 기하학적 형태나 수직과 수평선을 이용하기도 하고 또 추상적 패턴을 얻어 내어 스크린 프린트를 첨가하기도 하여 새로운 변화를 찾고자 나름대로의 고심을 하였다. 그러나 94년부터 95년까지 일 년간 미국 메릴랜드 타우슨대학 스튜디오 작업 중 우리의 정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다시 찾아내 그 뒤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변에서 가까이 느끼는 우리의 감동과 정서를 찾아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90년대의 작품들은 비단 천에 염색효과를 더 잘 나타내기 위하여 대부분 이중구조로 짜여 진 쟈가드 비단천(Jacquard Silk)에 초방염과 착색 발염을 이용한 스크린 프린트를 응용하여 제작되었다. 모티브로는 구겨진 달력이나 의자를 등장시켜 꽃이나 물고기가 가지고 있는 곡선의 평범한 이미지에 액센트를 주었고 나아가서는 아라비아 숫자, 문자 또는 포토샵으로 찾아낸 패턴 등을 착색 발염 기법을 이용하여 단조로울 수 있는 공간에 변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근래에 와서는 평면에서 오는 지루함에 약간의 변화를 주기 위해 염색된 천 위에 솜으로 두께를 주며 비단 실로 바느질하는 퀼트 작업도 시도하고 있으며 염색공예의 더 다양한 표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까지의 나의 작업들은 거의 모두가 비단 천 위에 파라핀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초방염이다. 비단천만을 굳이 사용하는 이유는 대부분 1호나 2호의 작은 붓으로 물감을 바르는 세밀한 디자인 때문이다. 그 갑갑증 나는 과정을 견딜 수 있는 건 물감의 농도에 따라 진줏빛으로 반작이는 비단천 위에 서서히 번지면서 스며드는 색의 느낌은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한다. 그것은 내 유년의 기억 속 청명한 하늘 아래 발랫줄에서 펄럭이던 은은한 옥색 옷감들을 떠오르게 한다. 지금은 이미 타계하셨지만, 나의 어머니는 봄이 오면 모시 옷감을 가을이 되면 아껴 두셨던 명주 옷감을 꺼내시어 정성스럽게 옥색 물감을 들이셨다. 계절을 따라 푸른 하늘 아래 깃발처럼 펄럭이던 옷감들은 나의 유년의 꿈을 키웠고 며칠간이고 남아있던 어머니 손톱에 물든 물감, 이러한 것들이 아마도 나에게 염색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세월이 가면서 더욱 짙어지는 나의 한국적 동질성인 작품이 나타나는 문양들이 초현실적 배경에서 부영하는 고립된 각각의 대상들에게 서로의 관계를 부여한다. 이 고립된 실체들… 안식을 베풀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는 의자, 양식화된 꽃은 인생에서의 바라는 것의 성취며 나아가 한국적 이상을 나타내고자 하였고 흰색으로 발색된 희미한 악보는 범사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그리고 우리나 나 자신이 되는 물고기(익투스)들은 이 모든 것 위에 자유롭게 유영하면서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미술 평론가이신 박래경 선생께서는 나의 작품에 대한 평 끝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그와 같은 무한한 표현 가능성의 시도에서 찾는 즐거움은 결국 그의 내면세계의 희구와 결합할 때 비로소 빛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작가의 작업이 단순히 손 끝 작업의 즐거움이나 눈으로 보는 것을 만족시켜 주는 일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워 준다. 그에게 있어 작업이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마음의 기도인 것이다. 기도의 자리가 되는 의자며 깨어 움직이는 물고기나 활짝 핀 꽃이 적절한 자리에 위치하면서 바탕의 무늬와 함께 펼쳐내는 푸른 우주공간 혹은 마음속의 공간 또는 물속의 공간으로 조형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기도를 통해 다시 찾은 마음의 평화로움이 잔잔히 퍼져 가는 여울이 되어 텍스쳐화되고 가시화되는 세계를 천연덕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되찾게 되는 마음의 평화를 모두와 공유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참으로 많은 시간, 많은 일, 많은 인연을 떠나보내며 살아왔다. 이제는 내게 남은 것들을 차분히 정리할 때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동안 소중히 쌓아 두고 모아 두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원한다면, 기꺼이 나누고 싶다. 마침내 모두 비워 나는 솜털처럼 가벼움의 날개를 가질 것이다. 2014년 10월, 가을의 시작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