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3월 26일 출간 | ISBN : 1193749158 | 312쪽

프롤로그 시작은 변명에서 1부 그저 평범하고 싶었다고 말한다면 2부 뒤늦게 부부가 되는 법 3부 결혼에 드리운 그림자 4부 각각의 사정 5부 그냥 ‘나’로 남고 싶다면 에필로그 다독이던 시간들

시작은 ‘변명’이었는지도 몰랐다.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는 내 인생이 꼭 내 탓만은 아니라는. 강박적으로 나를 점검하며 살았지만 여전히 그저 그런 내 인생에 대한 변명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이제야 비로소 행복하다고 느끼는데 그걸 설명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프롤로그〉 중

“갑상선암은 왜 걸리는 건가요?”
엉뚱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서 였을까. 아니면 반복되는 질문이 지겨웠던 것일까. 의사 선생님의 답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평소에 운동이나 좋은 식습관을 해오지 않고 건강을 돌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면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하나님한테 잘못 보여 그렇죠….”
〈조금 남겨두면 안 될까〉 중

덕을 많이 쌓고 대대로 복을 짓는 일이라고 해도 힘든 건 힘든 거니까. 묵묵히 일을 하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절도 다르지 않았다. 작은 공양간 안에도 권력과 파벌이 존재했다.
“오늘 이거 누가 한 거야?” 하며 반장님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그날, 그 음식을 담당했던 사람은 하루 종일 허리를 펼 틈 없이 일을 해야 했다. 특별히 잘못한 일이 있어서라기보다 그저 권력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이 한 번씩 겪게 되는 일이었고 권력에 굴복하는 과정이었다. 부처님의 공덕이 내려지길 바라고 모두가 힘든 일을 자처하는 것은 아니다.
〈참으면 병, 뱉으면 업〉 중

가난해도 결혼은 하고 싶었다. 그래도 되는 걸까? 결혼 이야기를 어렵게 꺼낸 남편은 모아놓은 돈이 많지 않아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둘 다 가진 것이 없고, 양가 부모님의 지원은커녕 당신들 노후 준비조차 제대로 안 되어 있는 형편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고 싶었다. 내내 뜨악하는 얼굴로 쳐다보는 친구에게 묻고 싶었다.
“왜 결혼하면 더 좋은 집에서 살아야하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다 갖추고 살아야 하는 거야?”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러려고 결혼하는 거야. 안정되고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하는 거라고.”
〈가난한 사람들이 부부가 되는 법〉 중

딸의 강한 독립심이 키우는 동안은 의젓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안타깝기만 한 것 같았다.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덮쳐왔다. 남편은 지금 내 유일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얽히고설키는 관계에는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 우리 두 사람을 연결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서로에게 얼마나 단단한 고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우리는 아이도 없고 재산도 없고 얽힌 게 아무것도 없잖아. 언제든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면 그뿐이야.”
“돌아가다니 무슨 소리야?”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중

아버지는 이상하리만치 집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저 빨아 놓은 옷을 챙겨 입고, 밥만 먹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우리 모두 아버지에게 쩔쩔매기 바빴으니 귀남이가 아니고 무엇인가.
“먹고산다는 건 치사하고 비굴한 거야.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깐 참고 견디는 거야. 너네 아빠랑 사는 거 나가서 일하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어. 여기가 내 직장이야….”
희미하게 쓴웃음을 짓는 엄마 모습에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 다 늙고 몸도 아파서 일하러 갈 데도 없어. 너네 아빠같이 못되고 독한 사람이, 이혼하자고 하면 오냐 하고 재산 떼어주겠냐 어디. 다 죽인다고, 다 불 싸지른다고 안 하겠냐. 이제 더 이상 싸우기 싫다. 그냥 조용히 있고 싶어. 이제 살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주머니의 돈〉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