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는 질병에 맞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기록이다” 인류의 역사는 생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류는 오랜 기간 생존을 위협하는 온갖 것에 대해 끊임없이 대응하고 저항하면서 문명의 진보를 이룩해왔다. 그래서 의학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인류 문명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위험인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살아남으려는 인류는 당대를 지배하던 문화와 교육 수준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 때문에 질병의 범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령 먹을 것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영양부족을 심각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오히려 음식물을 과잉 섭취해서 생기는 비만이나 성인병을 중요하게 다룬다. 위생 관념이 적던 시기에는 오염된 물과 지저분한 환경 때문에 생기는 질병이 많았지만, 근대 이후 개인의 청결이 상식처럼 자리 잡으면서 위생 문제로 생기는 병은 크게 줄었고, 발생하더라도 가뿐히 해결될 정도로 치료 난이도가 변화했다. 이처럼 현대의학이 탄생하는 데는 몇 가지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질병 vs 의학》은 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건을 중심으로 의학사의 맥을 짚고, 인류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쳤던 감염병과 질병을 시간순으로 살핀다. 의학이나 과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독자도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과 의학적 지식을 쉽게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단순한 감기와 충치로도 사망하던 인류는 어떻게 백 세 시대를 눈앞에 두게 되었는가. 그 답을 찾아보자.

저자 :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같은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재료로 분자생물학 연구를 진행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이용해 기초의학을 연구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의학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 교수로 지낸 뒤 2014년부터는 의학교육학 교수로 지내며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여러 전공을 경험하면서 쌓은 융합적 사고를 바탕으로, 의학을 전공하는 학생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과학과 의학 지식을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글쓰기와 강연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교수의 꿈을 이룬 해에 첫 책 《의학사의 숨은 이야기》를 출간했고, 그 이후 《10대에게 권하는 의학》, 《유전공학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처음 만나는 혈액의 세계》,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저도 의학은 어렵습니다만》,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세상을 바꾼 전염병》,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등 다수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과거에는 질병이 아니었지만 현재는 질병인 경우도 있다. 나이가 들어 노년에 접어들었을 때 허리를 꼿꼿이 펴지 못하는 것이 농경사회에서는 질병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현상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에는 질병 취급을 받고 있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가는 노화도 과거에는 질병으로 취급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고쳐야 할 질병인 것처럼 여기고 있고, 어린이가 말을 빨리 배우지 않으면 과거에는 기다렸지만 지금은 언어치료를 시작한다.
- 18쪽 〈질병의 범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중에서

당시에는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의학교는 나부의 신전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의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성직자 출신이 신의 도움을 받아 치료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의업을 행하는 사람들이 진단을 담당하는 사람, 마귀를 쫓는 사람, 약물요법과 수술을 시행하는 사람 등 세 부류로 나뉘어져 있어서 아직까지 질병을 의학이 아닌 종교의 영역에서 다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35쪽 〈고대인에게 질병은 신이 내린 벌이었다〉 중에서

유럽에서는 13세기에 칭기즈 칸이 이끄는 군대가 중국을 출발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쳐들어오면서 페스트가 옮겨지게 되었는데, 1340년대 중반에 우크라이나에 처음 페스트가 전파되었고, 1347년에 항구도시 제노아에 페스트 환자가 발병한 후 4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유럽 대부분 지역에 환자가 발생했다. 페스트 전파를 막기 위해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하자 자유를 더 억압받게 된 하층민들의 불만이 팽배해져 계층 간에 반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53쪽 〈페스트는 어떻게 중세를 멸망시켰나〉 중에서

1976년 8월 8일,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벨레뷰-스트래트포드(Bellevue-Stratford) 호텔에서 재향 군인들의 모임이 열렸을 때 약 2000명이 참석해 221명이 감염되고, 34명이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무슨 병인지 몰라서 재향군인병이라 한 이 감염병은 1977년 1월 18일에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감염병임이 최초로 알려졌다. 더위를 식히는 에어컨(냉방기)의 발견이 레지오넬라 감염증을 유발한 것이다.
- 86쪽 〈세상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질병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 중에서

의학지식이 충분치 않던 오래전에 감염병이 유행한 당시 기록을 토대로 어떤 감염병인지를 추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록이 부실한 것은 물론이고 병에 의한 증상이 계속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에서 유행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이 학자들 사이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독소에 의한 중독,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페스트, 출혈열, 홍역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104쪽 〈인간이 모이는 곳에 감염병이 있다〉 중에서

왁스먼은 모든 병원성 세균을 박멸할 수 있는 강력한 항생제를 찾아내고자 했다. 이미 페니실린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으나, 페니실린이 효과를 지니지 못하는 미생물도 많았으므로 왁스만은 병원성 세균 전부를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항생제를 찾는 것을 최종목표로 삼았다. 왁스먼의 연구팀은 방선균의 일종인 스트렙토마이세스 그리세우스(Streptomyces griceus)의 배양액에서 추출한 항생물질이 페니실린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세균감염에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다.
- 144쪽 〈질병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선을 구축하라〉 중에서

만약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한 종류의 세균 모두가 베타-락타메이스를 합성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진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세균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까?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유추하자면 그 세균이 사람이 만든 항생제에 의해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세균은 증식속도가 아주 빠르므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세균이 특정 항생제를 만나서 사라지기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항생제에 대항할 방법을 찾아낼 가능성이 크다.
- 186쪽 〈감염병의 진화〉 중에서

인류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인공 눈을 만들어주거나 손상이 생긴 코를 재건해주는 수술을 했다. 또 돌로 만든 기구로 머리뼈에 구멍을 뚫는 뇌수술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수술법이 신석기 시대에도 환자들에게 성공적으로 시도될 수 있었고,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현대의 최신 의학기술과 비교해도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간 수술이 크게 발전하지 못한 것은 균에 의한 감염으로 합병증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 201~202쪽 〈이발소의 삼색등은 동맥, 저액, 붕대를 상징한다〉 중에서

미국의 그로서리 중 하나인 CVS(consumer value store)가 운영하는 CVS Health 중에는 2010년대 중반부터 매장 내 약국 주변에 전화박스 모양을 한 공간(부스)을 설치한 곳이 생겨났다. 이 공간에 들어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원하면 컴퓨터 옆에 설치된 전화를 이용해 의사와 상담을 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원격진료가 현실에서 가능하기 시작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원격진료는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다.
- 258쪽 〈미국에 있는 환자를 한국에 있는 의사가 수술할 수 있을까〉 중에서

사망자는 200미터가 약간 넘는 반지름을 가진 원 안에 대부분 모여 있었고, 그 원 중심에는 펌프가 있었다. 사망자 중에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이도 있었지만 가정방문을 통해 사망자가 위 지도 안의 한 지역을 방문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펌프의 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손잡이를 없애자 환자가 줄
어들기 시작했다. 상수도 안에 콜레라의 원인이 되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을 거라는 스노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 276~277쪽 〈개인플레이에서 팀플레이로〉 중에서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연구 역시 이러한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단백질 구조 예측에 성공한 결과다. 아미노산이 연결된 분자인 단백질은 아미노산들이 어떤 순서로 배열되고, 어떻게 접혀서 어떤 모양의 입체구조를 이루느냐에 따라 기능이 달라진다. 흔히 탄수화물, 지질, 단백질이 사람의 몸에 필요한 3대 영양소라 하지만 탄수화물과 지질은 주로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기능 중 극히 일부만을 담당할 뿐이다.
- 308쪽 〈10년, 5년, 1년 후… 의료에도 특이점은 오는가〉 중에서